본문 바로가기
아동 심리학

[아동 심리학] 말을 안 듣는 아이 체벌 보다 깨닫게 하기, 엄마에게서 멀어진 아이 사랑으로 해결

by 송리스 2022. 10. 3.
반응형

 

 

 

 




엄마가 다시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계속해서 부드러운 방식으로 “하지 마, 위험해” 하고 이야기를 하면 어느 순간 아이 스스로 엄마가 했던 말을 고스란히 따라서 “위험해”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아이가 말과 대화법을 배워 가는 과정이며, 아이가 말을 듣게 되는 과정이다. 그러면 아이는 말의 의미뿐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을 배운다. 자기 자신은 부모의 존중을 받는 괜찮은 사람이고 세상은 꽤 믿을 만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부모와 세상에 대한 신뢰가 생긴 아이는 가끔 엄마가 강하게 야단을 쳐도 크게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고 잘 받아들인다. 안아주고, 먹을 것을 주고, 놀아도 주고, 자기를 믿어도 주는 좋은 엄마가 혼을 내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감정은 아이의 무의식 속으로 흘러들어 긍정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만든다. 

 

 

 

아이에게 체벌을 했을 때 문제점을 짚어 보자. 아이가 잘못했다고 자주 체벌을 하면,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 때 자기가 보고 배운 그대로 다른 사람을 대하게 된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른다. 체벌을 받은 아이들은 폭력적인 성격이 되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매를 맞다 보면 상황이 공포스럽고, 너무 아파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지 못한 채 맞아서 아프고, 기분이 나쁘고, 엄마 아빠가 싫다는 기억만 새기에 되므로 매를 든 효과가 하나도 없고 부모와 아이의 관계만 멀어질 뿐이다. 또 때려서 가르치면 나중에는 더 많이 때려야 효과가 나타난다. 아파서 처음에 맞을 때는 부모의 말을 듣게 되지만 내성이 생기면 웬만한 체벌에는 나쁜 행동을 고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잘 타일러서 깨닫게 하면 아이는 스스로 판단하여 나쁜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이런 현상을 ‘도덕성의 내면화’라고 하는데, 체벌은 외부의 힘으로 아이를 통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과정을 방해하게 된다. 자주 맞는 아이들은 ‘나는 나쁜 아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래서 ‘어차피 좋아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 행동을 수정하려 하기보다는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체벌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꼭 때려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아이의 행동은 다양하고, 평소와 같아 보이는 행동에도 다양한 이유들이 있으므로 그 판단은 부모가 세심하게 해야 할 것이다.

 

 

 

꼭 매를 들어야 할 때 주의해 줄 것은 화를 가라앉히는 것이다. 화가 난 상황에서 때리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때리게 되고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지 못하게 된다. 또 기준도 없이 아무 데서나 손에 잡히는 것으로 때리는 것은 좋지 않다. “다음에 또 이러면 두 대 때린다”라는 식으로 미리 경고를 하고, 체벌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는 같은 장소에서 정해진 매로 때린다. 직접 손으로 때리는 것도 좋지 않은 방법이다. 그리고 아이가 미워서 때린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해 주고 또한 맞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도 물어보면서 나쁜 감정을 풀어주는 것이 필요하고 때린 후에는 꼭 안아서 달래 주자. 또 양육을 할머니에게 맡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면서 낮 시간에는 떨어졌다 저녁에만 아이 얼굴을 보거나, 아예 주 중에는 할머니 집에서 지내게 하고 주말에만 함께 지내는 집도 많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주 양육자인 할머니만 좋아하고 엄마를 멀리하는 일도 생기게 된다. 이때는 아이의 애착 관계를 잘 살펴봐야 한다. 두 돌 전까지 아이들은 주 양육자와 애착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데 엄마가 아이를 키우지 않고 할머니가 키우는 경우 엄마보다 할머니를 더 좋아하고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은 문제 될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고, 오히려 엄마는 애를 잘 봐주는 할머니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만약 시골에 있는 시댁에 애를 맡겨 놓고 오랜만에 찾아갔는데 애가 엄마를 너무 반기면 할머니의 양육 방식을 의심해야 한다. 또 앞으로 애착형성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으므로 빨리 병원에 가 보는 것이 좋다.

 

 

 

 

 

아이들은 두 돌 반만 지나도 엄마라는 존재를 정확하게 인식한다. 자기를 돌봐 주는 사람을 그전까지는 무조건 ‘엄마’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 시기쯤에는 확실히 구별하게 된다. 때문에 이때는 자신을 길러 주는 사람이 따로 있어도 아이는 엄마를 더 좋아한다.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들어오거나, 엄마를 오랜만에 만나도 반가워하고 따르게 된다. 헤어질 때는 떨어지기 싫어 울기도 한다. 그러나 세 돌이 넘도록 엄마를 멀리한다면 애착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다. 또 주 양육자가 엄마인데도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한다면 이것 역시 분명한 애착 장애다. 물론 아빠가 아이한테 무척 잘할 경우 아이가 엄마보다 아빠를 더 따를 수 있다. 이때 엄마와의 애착 정도는 아이가 힘들고 아플 때 누구에게 칭얼대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세 돌이 지나면 아이는 엄마가 자기를 돌봐 주고, 아빠는 자기와 놀아 준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놀고 싶을 때는 아빠에게, 배고프거나 아플 때는 엄마에게 가는 것이 정상이다. 엄마와 할머니의 태도 차이도 아이가 엄마를 멀리하는 이유가 된다. “안 돼”라고 하기보다.”그래그래” 하며 안전에 크게 문제가 없는 한 무엇이든 하게 하는 할머니의 모습과  이런저런 조건을 다는  엄마의 양육태도는 다르다.  

 

 

 

예를 들어 보면  사탕을 줄 경우 엄마는 “많이 먹으면 이빨 썩으니까 1개만 먹어” “먹고 나서 꼭 양치해야 해” 그러나 할머니는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 한다. 엄마의 태도가 치아 건강 면에서 봤을 때는 옳지만 당연히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주는 할머니가 더 좋게 마련이다. 이런 경우 할머니와 엄마가 같이 있을 때는 할머니를 따르더라도, 할머니가 없을 때 엄마와 잘 놀면 큰 문제가 없다. 할머니와 애착이 강해 엄마를 멀리하건, 엄마가 육아에 자신이 없어 엄마를 멀리하건 해결책은 무조건적인 사랑밖에 없다.  더 많이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고, 더 많은 시간 아이와 놀아 주고, 아이로 인해 행복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때 버릇없게 굴어도 그냥 봐주자. 원칙을 강조하면 더 멀어질 수밖에 없으니 사랑이 충족된 후 훈육이 이루어져야 아이도 엄마 말을 믿고 잘 따른다. 할머니에게 아이 양육을 맡겼더라도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는 데려오는 것이 좋다. 매일 지지고 볶으면서 부모 자식 간의 정도 쌓여 가는 것이다. 엄마에게서  멀어진 아이가 엄마보다 더 간절히 친해지길 바라고 있었는지 모른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만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반응형

댓글